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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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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3
5월의 코트
시리즈
부제 20260513의 일기
본문 사람의 장기기억은 이례적인 일을 우선적으로 저장한다고 한다. 평이한 일상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 그게 생존에 어떻게 작동하는 요소가 될지 분석을 하고 되새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는 내 서른세 번째 생일에 대전이라는 지역변수를 만들어 작은 돌발성으로 오늘을 기억의 흐름속에 도드라지는 하루로 만들려했다. 그러나 변수는 지역이 아닌 인물이었다. 이모와 통화를 하다가 무심코 내가 이모가 사는 지역에 와있다는 말을 했고, 이모는 곧장 나를 댁으로 소환했다. 혼자서 여느때와 같은 휴일 루틴을 지역만 바꿔서 보내자고 다짐하고 대전에 왔건만, 전혀 다른 일정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모와 백화점에서 식사를 하고, 모든것이 과장스런 고급 미용실에서 마사지를 받으며 머리를 다듬고, 카페에서 일상을 나누었다. 비록 이태리식 오믈렛을 얹은 오므라이스와 지역 명물 푸딩과 내부에 폭포가 있는 대형 카페는 내 핸드폰 메모장 속 일정계획 안에 건조한 텍스트의 나열로만 박제되었지만 나름대로 만족스런 하루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모는 돌아가신 엄마와 닮아서. 이모와 손을 잡고 백화점과 거리를 거닐고 단 둘이 카페에 가는 건 몇 년전 엄마와 보내던 일상같아서 그리움과 따스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엄마가 돌아가시고나서 백화점에 잘 안 가게 되었다. 돈도 직업도 없는 스물 일곱은 기껏해야 아웃렛이나 영화관이 있을법한 복합몰에 가는 거다. 난 돈이 없었을뿐인데 백화점이 내게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그 뒤로 돈을 벌게 되었어도 백화점에 가서 비싼 옷을 사본적이 없다. 같은 브랜드의 옷을 사더라도 어쩐지 백화점 내에 입점되지 않은 곳에 가게 된다. 나는 엄마를 닮아 말랐었다. 키는 내가 조금 더 컸지만 사이즈는 같았다. 그래서 나이에 상관없이 입을 수 있는 옷들은 함께 입었다. 내 옷장에 남아 있는 코트들도 그런 옷들이다. 장식 없는 클래식하고 기본적인 디자인이라 엄마와 내가 같이 입었던 옷들. 지금은 살이 쪄 사이즈가 맞지 않아 못 입게 되었지만 그 옷들을 떠나보낼 수가 없더라. 그 코트들 말고 남겨둔 옷 중에서 모피코트가 한 벌 있다. 엄청나게 세련되고 멋들어진 옷이라 마치 드라마속 재벌집 사모님들이 입는, 단아하고 절제된 고급스러운 무게감을 은은히 내뿜는다. 그런데 그건 너무 '어른' 옷이라, 내가 입으면 어린 애가 엄마 옷을 훔쳐입은 티가 역력하다. 잔주름하나 없는 내가 그 옷이 어울리려면 20년은 더 성숙해야 태가 날듯하다. 엄마가 떠나신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엄마한테 가까워지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보다. 영영 잃었다고 생각한 일상을 닮은 사람을 통해 비슷한 방식으로나마 맛보았다. 달콤하고 다정하지만 동시에 슬펐다. 그래서 오늘은 오래도록 기억되겠지. 엄마가 돌아가신 지 7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잊고있던 상실을 마주하면, 부재의 존재가 너무나 선명해진다. 내 세상이 넓어져서, 내 마음이 밀도있게 차올라서. 한구석에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뚫린 구멍은, 평소에는 눈길이 가지않지만 한번 시선을 빼앗기면 한동안 계속 눈길이 간다. 아마 당분간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울게 될 것 같다. 펼쳐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