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3
'귀찮'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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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3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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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다'는 말은 뭉뚱그린 말이다. 옷을 벗어서 빨래통에 넣거나 옷장에 걸어두거나, 건조대에 걸린 빨랫감을 걷어 개서 정리하고, 팔을 뻗어 쓰레기통에 빈 약봉지를 넣는 것, 자리끼 물컵을 매일 씻어 교체하는 일 등 일상을 유지하는 일에 쓸 여력이 없을 때를 모두 합쳐 세 글자로 얼버무려 나는 '귀찮다'고 말한다. 5월은 평온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그 상태가 지속되길 바랄 정도로 감정도 에너지도 '제정신인' 사람 같았다. 6월은 바라 마지 않았던 경조증이 찾아왔다. 바이브 코딩에 몰입하고, 방 한구석에 티룸을 꾸미고, 돈을 펑펑 쓰고, 노래를 부르고, 뭐든지 신이 났다. 그리고 7월엔 뭐든지 '귀찮아'졌다.
6월에 경조증을 조금 즐기다가 잠을 못 자게 되자 병원에 찾아가 증상을 말씀드리고 기분을 조금 가라앉혔다. 주치의 선생님은 내 에너지보다는 기분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데에 신경쓰신다. 하긴 죽으려던 환자였으니 에너지보다는 기분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기분은 일정하다. 6월에도 지금도. 에너지만 차이가 날 뿐이다. 에너지라는 게 내가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워서 웹다이어리엔 '기분 ·에너지'로 합쳐서 표시하고는 있지만, 분명히 다르긴 하다는 게 느껴진다. 기력이 없다, 기력이. 氣力. 기분이 안 좋으면 냅다 30분을 달리거나 정 안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칼로 피부를 그으면 빠르게 해결할 수 있지만, 氣를 다스리는 법은 스스로 터득하지 못했다. 내가 도사냐?
기분은 일정한데 기력이 들쑥날쑥하다는 건 위화감이 들 정도로 정말 이상한 감각이다. 마치 흔들리는 놀이기구에 타고 있는데, 목 아래로는 놀이기구와 함께 흔들리고 있지만 머리는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 이게... 맞나? 이 머리가 내 머리가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이상하다. 내 거 맞아? 그치만? 위화감이 들어도 하나라도 멀쩡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이 위화감은 치워둔다. 여기에 몰두하고 싶지는 않다.
5~7월의 타임라인을 돌이켜보니 또 다시 정신병이 도진다(당사자성 발언ㅋㅋ). 내가 이 사이클의 한 가운데에 있다는 걸 늘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가끔식 체감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때는 삶을 관조할 수 없게 된다. 메타인지가 안 된다고. 여생을 늘 이렇게 살아가게 되겠구나! 평안한 척 하다가 웃고 울고 하겠구나! 지겹다! 귀찮다! 살기 싫다! 적극적으로 인생을 끝낼 생각은 없지만 역시 인생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까지 습관적으로 생각을 늘어놓게 된다.
몇 주 전 나는 내가 죽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죽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게, 내 어휘의 한계로 인해 표현할 법을 몰라서 유사한 단어를 찾아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날은 여름의 초입이었고, 시골의 한 카페의 마당의 잔디밭 구석의 나무그늘 아래서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죽고 싶다는 말이 떠올랐다. 왜냐면 너무 평온했거든. 그 잔디밭도, 나무그늘도, 여름냄새도, 예전의 시골집이 떠올라서 그리운 마음도 들고. 그래서 죽고 싶었다. 그 얘기를 챗 GPT한테 설명하다보니 -이런 무거운 얘기를 현실친구한테 하기엔 좀 감정쓰레기통으로 쓰는 것 같아서- 나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내게 있어 죽음이라는 개념이, (無가 됨으로서)절대적으로 평온한 상태가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라서, 그저 평온을 갈구하는 마음을 '죽고 싶다'라고 표현해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난 그 뒤로 내가 이제까지 죽고 싶다고 생각해 왔던 건 사실 진짜로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평온하고 싶었던 거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응 근데 다시 울증 오니까 아니야. 역시 인생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귀찮아.
시간이 너무 안 간다. 그냥 퇴근하고 잠만 잤으면 좋겠다. 다 귀찮으니까. 잠으로 도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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